Articles21세기 교회를 위한 예수 선언
예수그리스도의주권회복을위한대헌장
A Magna Carta for Restoring the Supremacy of Jesus Christ
21세기교회를위한예수선언
A Jesus Manifesto for the 21st Century Church
레너드스윗(Leonard Sweet), 프랭크바이올라(Frank Viola)
크리스천들은복음을그리스도가아닌다른많은여러가지것들로바꾸어놓았다.
예수그리스도는모든것들을한데모으고, 그것들에게중요성과현실성, 그리고의미를주는중력의당기는힘(the gravitational pull)이시다. 그리스도가없이는모든것은가치를상실한다. 그리스도가없이는모든것들은우주안에서떨어져나간조각처럼부유하게된다.
모든영적진리, 가치, 덕, 은사의구현이며화륙이신그리스도를잊은채영적진리, 가치, 덕, 은사를강조하는것은가능하다.
진리, 가치, 덕, 또는영적은사를추구하면서생명력을잃은것을얻을수있다.
그리스도를구하고, 그리스도를품으며, 그리스도를알면, 생명이신주님을만날수있다. 주안에모든진리와가치와덕과은사가생명력있는모습으로존재한다. 아름다움은우리를사랑스럽고사랑할만한존재로만드시는그리스도의아름다움안에서의미를가진다.
기독교는무엇인가? 기독교는바로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그이상도그이하도아니다. 기독교는이념이아니다. 기독교는철학이아니다. 기독교는한개인에서발견되는아름다움, 참됨, 선함에관한“복된소식”이다. 성경의공동체는그개인에게연결된곳에서세워지고발견된다. 회심은방향의전환그이상으로관계의변화이다. 예수께서사용하신고대히브리어슈브(shubh) 또는아람어동의어에서“회심”에로의부름은하나님을먼곳에서바라보는것이아니라, 하나님께서인간관계의중심에계시는관계속으로들어오는것이다.
이러한의미에서우리는오늘날교회속에서엄청난단절을감지한다. 그래서다음과같이선언한다.
우리는오늘날교회가앓고있는가장심각한질병은예수결핍장애(JDD: Jesus Deficit Disorder)라고믿는다. 개인으로서의예수점점더정치적으로부적절하게여겨지며, 예수는“정의,” “하나님의나라,” “가치,” 그리고“리더십원칙”의언어로대체되고있다.
지금이시간우리는하나님께서우리에게주님이신예수그리스도의우선성을중심으로품도록부르시고계심을느끼는것을고백한다. 특별히……
1. 크리스천의삶의중심과둘레는인격체이신그리스도이외의그어느것도아니다. 그에게그리고그에관해연결된것을포함한모든것들은그의무엇과도견줄수없는가치의시각에서는감추어져버린다. 그리스도를아는것이영생이다. 그리고그를심오하고, 깊게, 그리고현실적으로알뿐만아니라그의무한한풍성함을경험하는것은첫크리스천들에게서와마찬가지로우리의삶에가장중요한추구이다. 하나님께서는우리들의삶에있어서잘못된것들을고치시려는것보다는우리의상처를통해우리를발견하시고우리에게그리스도를주시려고하신다.
2. 예수그리스도는그의가르치심과분리할수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제자들에게“나의가르침을따르라”고했다. 소크라테스도제자들에게“나의가르침을따르라”고했다. 부처는제자들에게“나의명상을따르라”고했다. 공자는제자들에게“나의말을따르라”고했다. 모하메드는제자들에게“나의고상한기둥들을따르라”고했다. 그러나예수님께서는제자들에게 “나를따르라”고하셨다. 다른모든종교에서추종자는창시자와의관계를갖지않고도그의가르침을따를수있다. 예수그리스도는다르셨다. 예수님의가르침은예수님자신과분리할수없다. 예수그리스도는여전히살아계시고, 그는그의가르침의구현이시다. 그러므로그리스도를단순히하나의도덕적, 윤리적, 또는사회적가르침의창시자로취급하는것은심대한오류이다. 주님이신예수님과그의가르침은하나이다. 매체와메시지는하나이다. 그리스도는하나님의나라와산상수훈의성육신이시다.
3. 하늘과땅에서하나님의위대한선교와영원한목적은개인으로서의그리스도(머리)와공동체로서의그리스도(지체) 안에서중심이된다. 이우주는그리스도께서모든만물을자신으로채우시는완전함의마지막목표를향해움직이고있다. 그래서진정으로선교적이된다는것은개인의삶과목회를그리스도위에세우는것을의미한다. 그리스도는하나님의계획의심장이며혈관이다. 이사실을깨닫지못하는것은줄거리를놓치는것이며, 곧모든것을놓치는것이다.
4. 예수님을따르는자가된다는것은이식(implantation)과첨가(impartation)에서처럼모방하는것이아니다. 성육신(incarnation)-하나님께서아기의형태와인간적접촉으로우리와연결되셨다는뜻-은기독교의가장놀라운교리이다. 성육신은“이전에도계셨고장차오실” 주님께서지금우리와함께하시며우리안에서우리를통해서그의부활의삶을살고계시면서일거에그리고지속적으로일어나는사건이다. 성육신은단지예수님에게만적용되는것이아니라우리모두에게적용된다. 물론동일한성례전적방식으로는아니지만그래도근접하게말이다. 우리에게우리의삶에서그리스도가“실제”가되도록하나님의“영”이주어졌다. 베드로가말했듯이우리는“하나님의본성에참여자”가되었다. 그렇다면이토록위대한진리앞에서우리는장난감과자질구레한놀이감을구할수있는가? 어찌우리는보잘것없는은사를탐하고종교적, 영적인것들을바랄수있는가? 우리는전능자의불과선물로주신신적삶에의해하늘에서부터감동을받았다. 하나님아들자신의부활의삶으로우리의생명은사망을이겼다. 어찌우리가열정을가지지않을수있는가?
질문을하자면주님의놀라운삶의엔진또는가속페달은무엇인가? 주님의외적행사의곧은뿌리또는원류는무엇인가? 그것은다름이아니라예수님은내주하시는아버지에의해사셨다는사실이다. 그가부활한후그길은제거되었다. 하나님아버지께서하신것은예수님께하신것이고, 예수님께서하신것은당신과나에게하시는것이다. 예수님은우리안에내주하시는분이시고우리는예수님자신의삶과아버지와의관계를함께나눈다. 크리스천들에게예수님을닮도록강요하는것과이식된그리스도를전하는방법을배우는것사이에는거대한차이의바다가존재한다. 전자는단지실패와좌절로끝나게된다. 후자는삶의관문이며우리의삶과죽음의기쁨이된다. 우리는바울이“그리스도가내안에산다”고한말에동의한다. 그리스도안에서우리는살고, 숨쉬며존재한다. “예수님이라면어떻게하셨을까?”는기독교가아니다. 기독교는“그리스도가나와우리를통해서무엇을하실까? 그리고예수님을그것을어떻게하실까”를물어야한다. 예수님을따른다는것은“믿고순종”(응답)하며, 성령의능력을통해그가내주하시는삶을사는것을의미한다.
5. “역사의예수”는“신앙의그리스도”와단절될수없다. 갈리리해변을걸으셨던예수님은오늘날교회에안에내주하시는분과동일한분이시다. 마가복음의예수님과바울의골로새서의놀랍고, 모든것을품으시는우주적그리스도사이에단절은없다. 1세기에사셨던그리스도는시간이전에존재하셨다. 그는또한시간이후에도존재한다. 그는알파요오메가이시며, 시작이고나중이시고, A이시며 Z이시며, 동시에모든것이되신다. 그는미래에계시고, 동시에세상의마지막에계시며모든하나님의자녀들속에내주하신다. 이역설적진리를품지못할때터무니없는문제를만들어내왔고하나님의백성의눈에서그리스도의위대함을축소시켜왔다.
6. 그리스도의“목적”과그리스도의인격을혼동하는것은가능하다. 초대교회가“예수님은주님이시다”라고했을때그들이“예수님이나의핵심가치”라고뜻한것이아니다. 예수님은하나의목적이아니다. 그는알려지고, 사랑받으며, 경험되고, 경외받으시며, 구현되시는실재하고살아계신분이시다. 그의목적과사명에초점을맞추는것은그에게초점을맞추고, 따르는것과동일한것이아니다. 그의거부할수없는아름다움과깊이를헤아릴수없는사랑에사로잡힌기뻐뛰는마음으로그를섬기는것에반하여예수를섬기는“신”을섬기는것이모두가능하다. 예수님은우리로하여금하나님에대하여관계로, 모든관계의하나님으로다르게생각하도록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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